말씀으로 산다는 것을

신명기 8:3 너를 낮추고 굶기시다가 네가 알지 못하고 네 조상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먹게 하신 것은, 사람이 빵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고 사람이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는 것을 너에게 알게 하시려는 것이었다.

주일학교가 잘못 가르친 성탄절 [242호 특집 청소년

주일학교가 잘못 가르친 성탄절
[242호 특집 청소년 교회 교육을 다시 생각한다]
[242호] 2010년 11월 24일 (수) 16:30:48 김동문 yahiya@hanmail.net
교회 교육에서 절기 교육은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그러나 절기 교육은 주로 일회성 혹은 연례행사처럼 판에 박힌 모양과 내용으로 치러지곤 한다. 큰 고민도 없어 보인다. 성경적인 고민이 아니라 욕먹지 않을 정도의 절기 행사를 만들어 내야 하는 ‘직업적’ 고민에 빠지기도 한다. 성탄절이 다가오면 눈 내리는 크리스마스를 연상시키는 절기 장식은 물론, 서구풍의 구유 장식, 성탄 트리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성경과 거리가 먼 풍경이 변함없이 펼쳐진다. 교회 용품 코너에서 어렵지 않게 구입하여 부담 없이 장식을 한다. 익숙한 연례행사로서의 성탄맞이가 아닌 성경이 말하는 성탄의 의미를 오늘에 재적용하는 도전의 시간으로 성탄절 행사를 준비할 수는 없을까.

예수님은 ‘말’ 구유에서 태어나지 않았다

해마다 성탄절이 되면 언제나 등장하는 친숙한 그림이 있다. 아기 예수님이 말구유에 누워 계시고 그 주변에 말을 비롯한 양과 몇 마리 가축들이 마리아, 요셉과 함께 있는 그림이다. 그리고 목자들과 화려한 옷을 입은 동방박사 세 사람이 둘러서 있다. 배경이 되는 온 세상이 흰 눈으로 덮여 있다. 그야말로 화이트 크리스마스, 고요한 밤이다.

그러나 전통적인 성경 읽기가 아닌 사실적인 성경 읽기를 통해 성경이 말하는 성탄 이야기를 다시 읽어 보자. 

“예수님이 어디서 태어나셨나요?”
“베들레헴 말구유요.”

이것은 정확하게 틀린 대답이다. 예수님은 말구유에 태어나신 적도 없을 뿐더러, 우리가 생각하는 구유에 누워계셨던 것도 아니다. 성경 어디에도 예수님이 말구유에 태어났다고 말하지 않는다. “맏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눅 2:7)라고 적고 있을 뿐이다. 오해를 풀기 위하여 다시 팔레스타인으로 여행을 떠나 보자.

예수님 당시 팔레스타인 인구 현황에 대한 다양한 연구에 따르면, 당시 베들레헴 인구는 최대 300명 정도였다. 종교적 중심지 예루살렘은 거주 인구가 최대 3만 명이 되지 않았다. 예루살렘 거주자 가운데 절대다수는 제사장을 포함하여 레위인 등 성전에서 일하던 성전 관계자들이었다.

‘구유’ 이것은 일반 가정이나 숙박업소의 마구간을 의미하지 않는다. 소 외양간도 아니다. 베들레헴에서는 말이나 소를 키우지 않았다. 양이나 염소가 일반적이었다. 드물게는 나귀가, 아주 드물게는 낙타가 있었을지 모른다. 양이나 염소 우리는 울타리만 쳐져 있는 경우가 일반적이었다. 겨울철을 대비하여 종려나무 잎과 흙을 이용한 지붕을 씌운 우리가 존재하기도 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우리에는 천장이 없었다. “밖에서 밤에 자기 양떼를 지키”(눅 2:8)던 상황을 떠올리면 예수님의 탄생 시기는 눈 내리는 겨울철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 양의 우리는 엉성하게 나뭇가지로 울타리를 만든 경우가 일반적이다. 양의 우리는 높은 지붕이 있는 외양간이 아니었다. (사진 제공 김동문)

목자들은 주로 들판에서 생활을 한다. 목자라고 모두가 자영 목자라고 생각할 수는 없다. 예수님 탄생을 전후한 시기에는 고용 목자 즉 삯꾼 목자들이 더 많았다. 예루살렘의 돈 있는 이들의 가축을 키우던 이들이 많았던 것이다. 겨울철이 아니면 들판에서 꼴을 뜯기면서 양과 염소들과 함께 생활한다. 야외에 머물다가 비라도 지나가거나 추워지는 시간이면 몸을 피하고, 양이나 염소 등을 숨기는 공간들이 있었다. 석회암 산지에 생긴 자연 동굴 등이었다. 예루살렘이나 베들레헴 지역은 석회암으로 구성된 산지가 많다. 이 석회암 지역에는 여러 가지 영향으로 생겨난 자연 동굴이나 웅덩이가 많았다. 이런 곳에 지푸라기와 엉성한 물통과 먹이통을 놓곤 했다. 이런 공간은 때로는 추위를 피하거나 하룻밤을 지새울 수 있는 쉼터가 되기도 했다. 오갈 데 없었던 예수님 일행이 이런 공간이라도 얻을 수 있었다고 볼 수는 없을까?

   
▲ 양의 우리는 들에서 양을 칠때는 더욱 단순했다. 양의 우리에 지붕이 있는 경우는 제한된 계절에 제한된 용도일때 뿐이었다. (사진 제공 김동문)

마리아와 요셉에게 나귀는 없었다

요셉이 임신한 마리아, 만삭이 다 된 마리아를 나귀에 태우고 베들레헴으로 가는 장면을 쉽게 떠올리곤 한다. 그러나 마리아와 요셉에게는 자가용이 없었다. 오늘날의 자동차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당시의 교통수단으로 나귀와 말, 낙타를 꼽을 수 있다. 여기에 말이나 나귀가 끄는 수레가 더해질 수 있겠다. 당시 나귀는 고급 승용차에 해당했다. 흰 나귀는 아무나 탈 수도 없었고 지체 있는 이들의 소유였다. 화물수송이나 타는 용도로 나귀를 사용하던 이들도 서민이 아니었다. 그 시기에 말은 군수용품이었다. 로마 총독부나 주둔군의 고위직, 특별한 임무를 가진 병사들 외에는 말을 이용할 수 없었다. 낙타는 부자들의 장거리 출장용, 큰 농사를 짓는 이들의 화물수송용이었다. 평범한 서민들의 교통수단은 두 다리였다. 

마리아나 요셉 모두 ‘깡촌’ 나사렛 사람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다고들 말한다. 깡촌에서 사는 – 최소한 당시 거주지가 나사렛이라는 것을 고려하면 – 사실혼 상황도 아닌 가난한 부부가 나귀를 타고 베들레헴까지 오갔을 가능성은 없다. 마리아의 친인척인 사가랴가 제사장 집안이라고 하여 부자였을 것 같지도 않다. 부자였다고 한들 제사장이 사용하는 업무용 나귀도 개인 소유는 아니었을 것이다. 사가랴 집안이 마리아에게 나귀를 빌려 줬을 가능성 또한 없다.

마리아와 요셉은 걸어서 일주일 넘는 거리를 움직였을 것이다. 나사렛에서 베들레헴까지 ‘족장로’로 부르는 사마리아 산지 길과 유대 산지 길을 따라 이동했을 경우의 소요 시간이다. 그렇지만 당시 보편적으로 유대인들이 이 길을 사용하지 않았음을 고려한다면 족히 편도 2주는 걸렸을 것 같다. 어쨌든 이들은 걸어서 베들레헴으로 향했을 것이다. 베들레헴으로 가는 길에 세례 요한이 출생한 예루살렘 근교의 사가랴 집(오늘날의 엔케렘)을 찾았을 수도 있다.

   
▲ 나귀는 화물 수송용 또는 타는 용도로 사용된다. 예수님 시대때는 자가용에 해당했다. (사진 제공 김동문)

예수님은 ‘마리아의 아들 예수’

예수님 당시 자녀들은 ‘누구의 아들’로 불렸다. 성이 없던 시절이었기에 한 사람 한 사람을 구분하기 위하여 지역 연고나 가족 연고를 이름에 덧붙이곤 했다. 누구의 아들이라고 불릴 때는 당연히 아버지 아무개의 아들로 불렸다. 그런데 예수님은 요셉의 아들이 아닌 마리아의 아들 예수로 불렸다. 이것은 아비가 누군지 모르는 마리아의 아들 예수라는 의미였다. ‘아비 없는 자식’ 또는 ‘호래자식’이라는 비아냥거림과 조롱이 섞여 있었던 것이다.

동방박사 세 사람?

동방박사들과 목자들은 동시에 출현하지 않았다. 성극을 할 때면 으레 아기 예수님을 경배하는 이들 가운데 목자들과 동방박사가 동시 출연한다. 박사이니 박사 가운을 입혀서 출연시키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은 성경적이지 않다. 이 이야기를 풀어 보자.

1) 동방박사들은 박사가 아니었다

그들은 페르시아 점성술사였다. 이들은 자신들의 지식에 바탕을 두고 예루살렘으로 유대인의 왕을 찾아 나섰다. 동방, 오늘날의 페르시아에서 예루살렘까지는 어림잡아 1500킬로미터 이상이다. 비행기로도 2시간 안팎이나 걸린다. 아마도 3개월 안팎이 걸렸을 이 장거리 여행에 이들은 낙타를 타고 이동하였다. 다른 교통수단은 불가능했다. 당시 사막 횡단이 수반되는 장거리 여행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재력도 있어야 하고 모험심도 있어야 가능했다.

2) 동방박사는 모두 몇 명이었을까?

흔히 3명이라고 알고 있다. 그런데 성경 어디에도 3명이라는 말은 나오지 않는다. 전승에 따라 동방박사가 3명이라고 말을 한다. 그러나 조금 더 정확한 성경 교육을 하려 한다면 그냥 ‘동방박사들이 왔다’고 말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3) 동방박사들이 예수님을 만난 것은 언제일까?

그거야 예수님이 태어나신 날 아닌가? 그렇지 않다. 마태복음 2장 16절에서는 헤롯이 박사들을 만난 시점 등을 기준으로 하여 베들레헴 주변 지역의 두 살 이하 어린아이들을 죽이는 장면이 나온다. 박사들이 예수님 탄생일에 베들레헴에 들어왔다면 헤롯이 이렇게 하지 않았을 것이다. 정확히 그때를 알 수는 없다. 아마도 예수님 일행은 헤롯의 죽음의 위협을 피하여 이집트(애굽)로 들어가기까지 베들레헴 지역에 살고 있었을 것이다. 동방박사들이 별을 발견한 시점부터 헤롯이 두 살 이하의 어린아이들을 죽이던 때까지는 2년여의 시간이 있었다. 이 기간 중 많은 시간은 동방박사들이 그들의 나라에서 베들레헴까지 오는 데 사용되었을 것이다. 최소한 동방박사들은 예수님 탄생 1년은 족히 지났을 시기에 베들레헴을 찾았을 것이다.

4)동방박사는 별 따라 오지 않았다

동방박사는 별의 인도를 받아 예루살렘까지 온 것이 아니다. 별을 발견(관측)하고 자기들 나름대로 계산하고 판단하여 예루살렘으로 온 것이다. 동방에서 그들이 본 별은 예루살렘에서 베들레헴으로 발걸음을 옮길 때 문득 다시 나타났다고 성경은 적고 있다. “박사들이 왕의 말을 듣고 갈새 동방에서 보던 그 별이 문득 앞서 인도하여…”(마 2:9) 갔다고 성경은 분명하게 적고 있다. 별에게 끌린 이들이 정작 별의 인도를 받아서 갔던 구간은 예루살렘에서 베들레헴까지 길어야 8킬로미터 정도였다.

동방박사 이야기를 나누면서 헤롯왕의 나이에 무관심했던 것 같다. 동방박사들은 예루살렘에 이르러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뇨’라고 물었다. 당시 이 질문을 들은 사람들은 헤롯왕이 낳은 새로운 왕자가 어디 있느냐는 뜻으로 해석했을 것이다. 그러나 헤롯왕이 주전 74년부터 70년을 살았음을 고려하면, 칠순에 가까운 헤롯왕이 늦둥이를 낳았다는 말이 된다. 동방에서 온 차림새가 이상한 무리가 왕자에게 문안하겠다 하니 예루살렘 사람들에게 이야깃거리가 되었을 것이다.

맺는 말

있는 그대로의 예수님의 탄생 이야기에서 엿볼 수 있는 것이 있다. 예수님은 아비 없는 자식처럼 태어났다. 그의 탄생을 함께해 준 이들은 유대 땅에서는 사회적으로 왕따 대상이기도 했던 목자들, 고용된 목자 즉 삯꾼 목자들이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이방인 그것도 종교적, 인종적으로 유대인과는 상종할 수 없는 존재였던 페르시아의 종교인들이었다.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요 1:13)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 아님을 보여 준다. 예수님의 탄생 이야기는 이런 복음을 너무나 구체적으로, 적나라하게 드러내 주고 있는 것이다. 종교나 인종 등 수많은 이유로 막힌 담이 존재하는 그 시대에, 막힌 담이 깨진 자리가 예수님의 탄생 이야기에 담긴 것이다.

물론 이런 해석과 다르게 해석하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다만 익숙한 성경 읽기를 넘어서서 시대적인 배경 속에서 성경을 다시 보도록 하는 훈련이 교회 교육에 주어졌으면 하는 고민을 담아 본 것이다.

성탄절을 성탄의 의미를 느끼고 나누는 중요한 절기로 맞이할 수는 없을까? 이번 성탄절에는 세계지도(최소한 중동 지도)와 당시의 탈 거리, 먹을거리, 입을 거리 등을 잘 소개하면 좋겠다. 입체적으로 지형을 느낄 수 있도록 돕는 구글 어스도 활용하고, 예수님 시대 생활 풍습을 담은 시청각 교재나 1세기 전후한 시대의 로마제국이나 팔레스타인, 페르시아의 문화 관련 동영상도 활용하면 좋을 것 같다. 예수님의 탄생은 시공간 속에서 실제 벌어진 일이기 때문이다.

해석이 없는 ‘재현’하기를 넘어서야 한다. 성경이 말하는 성탄의 의미를 현재의 자리에 바로 적용할 수 있도록 고민하는 교육이 이뤄지면 좋겠다. 의례적인 이웃 돕기 활동을 넘어서야 한다.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연상시키는 장식들을 제거해 보라. 아이들이 (때로는 교회 어른들이) 문제 제기를 할 것이다. “어, 전도사님! 왜 이렇게 성탄 장식이 이상해요?” 그때 그 질문을 성탄의 의미를 나누는 계기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어떻게’가 아닌 ‘왜’라는 질문을 통해 우리는 성탄의 의미를 돌아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스도 빠진 마스(축제)부터 돌아보자.

김동문 목사‧본지 편집위원 yahiy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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룻기1 C.S루이스 기독교는 은혜이다 은혜가 잘 담아진 책=

C.S루이스 기독교는 은혜이다
은혜가 잘 담아진 책= 룻기
룻기배경은
사사가 치리하는 때(대략 350-400년간) 흉년이 들었다

사사기 21:25 그 시대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으므로, 사람마다 자기 보기에 옳은 대로 행하였다.

쫓아내지 못하였더라=쫓아내지 않았더라
타락된문화가 매력적임

엘리멜렉 = 하나님은 나의 왕이시다

* 흉년에 하나님께 의지하지않고
여호와께 묻지않았으므로 사울의 촛대가 다윗으로 옮겨짐(역대상10장)

멸망당한자의 공통된 특징= 주님께 묻지않음
내맘대로 살겠다=기도하지않는자의 교만

늘 주님께 물어보고/기도하는 삶을 살아야한다
말이 안될 때 주님께 물어보라 응답해주신다

롯 아브라함의 조카
아브라함을 떠나 소돔과 고모라로 가며 쾌제를 부림/여호와의동산이 애굽같았다 (미국=애굽) 소돔과 고모라가 하나님이 주신 거라 착각함

모압의 불행한 역사
롯이 소돔과 고모라에서 망한 후 두딸이 근친상간으로 암몬/모압 낳음/저주의시초
모압은 음란한 땅(민25)

유대땅에 흉년이 임하고 난 후
주님께 물어보지 않고, 음란한 모압땅으로
선택한 엘리멜렉 통해 우리가 깨달을 것은
1. 마태복음1장5절 -예수의 족보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룻기남편)를 낳고
라합= 여호수아/ 두 정담꾼을 숨겨준 기생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

흉년은 가나안땅에 들어오자마자 생김
엘리멜렉가족은 버티지 못하고 피하기만 했음

* 우리에게 필요한 태도
기다리고 엎드릴 때 이다
주님의 뜻을 물어보는 것이다
인간이 가장 못하는 것 기다림이다!

하나님의 섭리 중에 결정됨
* 기다리십시오!!!! 하나님의 열망을 가지고
기다리시고 기도하세요 (엘레멜렉의 실패)

2. 모압지방서 거류= 뿌리를 내려서 거주하려 함/ 잠시 흉년만 피하려고 했는데 (롯도 처음엔 소돔과 고모라 근처에 거주했었다. 유익이 아닌 이익을 원함으로 거류하게됨)

인생의 주인은 주님아니면
어둠의 권세잡은자이다

10년을 거주하매
– 선택이 중요하다= 한번 발목이 잡히면
인생이 주인이 내가 아니기에 어둠의 권세잡은자 에 잡혀지내게 됨(탕자/ 이방땅으로갈때 주려 죽게 되었을 때 돌아오려는 결정함)

롯=엘리멜렉=둘째아들 탕자
모두 같은불행을 선택함

말론/기룐 의 뜻

잔인한 자비로 인해
남자 셋이 죽고 여자 셋이 남음
유대땅에 베들레헴=떡집(고향땅으로 돌아감)
나오미=기쁨/희락이라는 의미

동네사람에게 자조적인 말투로
나오미라 부르지말고 마라=쓰라리라 라고
말하시오 (하지만 마라라고 불려지않음)

*스펙 빽 집안 다 안좋지만 세상의 끈이
없음에 나약하지만/ 그 끈이 무너지고
오직 주님만 붙잡기를

은혜받을 심령그릇을 위해
교회를 위해
베들레헴의 풍년의 꿈을 기대하며
기도합시다.

룻기5 나오미가 룻을 위해 안식처를 구함 인류의 싸움

룻기5

나오미가 룻을 위해 안식처를 구함
인류의 싸움은 안식
누군가가 대신 싸워줘야 한다
룻이 안식을 위해 보아스가 일어난 것은

아담을 통해서 안식이 깨짐
안식을 회복하기 위해 그리스도를 보내심

인류의 첫번째 선물=안식
안식의 주체자이신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안식케하기 위해
매일 초대하심

기업에 관한 율법에 명한 내용
1. 히브리인이 팔렸을 때
2. 땅에 관한

* 야곱의 기업)

야곱을 통해서 기업을 이루심
라헬을 얻기 위해 7년을 일함
7년을 더 일해서 레아/라헬을 얻는다.
2명의 아내가 경쟁하듯 12아들을 낳음

오욕의 역사
– 르우벤 서모인 빌하와 통간
– 유다의 며느리 다말 룻과비슷한 사연
유다를 속여 동침함

끊어질듯 망가질듯 하지만
하나님은 기업을 유지케 함

– 요셉의 꿈을 주셔서 일관적으로
주님은 주님의 뜻을 이루심

룻기 4:11 그러자 성문에 있던 모든 백성…. 이스라엘 집을 세운 라헬과 레아 두 사람과 같게 하시고, 그리고 당신이 에브라다에서 유력하게 되며, 베들레헴에서 유명하게 되기를 바라오.

에브라,베들레헴 깊은 하나님의 일관된 법칙

창48:7
…에브랏이 곧 베들레헴이요…
라헬이 장사됨 12아들을 실질적으로 일으킴

* 하나님은 야곱에게 약속해주신 기업을
망가질듯 무너질듯하지만 이어오게하심
하나님의 열심

하람= 열심
요셉에게 꿈을 주시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열심(하나님의 열심) 으로 행하심

룻기의 배경
사사기에 제일 많이 나오는 단어= 밤
수많은 죄악이 구토하듯 토해짐
나오미가 만난 인생에 이방여인을 통해
아침의 서막이 보이고 구약부터 약속하신 기업이 하나님의 열심으로 죄악을 뚫어내고
하나님의 의를 드러내심

하나님의 헌신으로 빈손으로 들어온 여인을
통해 집(=기업)을 이어이루심

*시편 127:2 너희가 일찍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양식을 먹는 것이 헛되다. 그러므로 주께서 자신의 사랑하는 사람에게 잠을 주신다.

잠- 장차오실 예수님의 죽음 집을
다시 세우시겠다

인간은 끊임없이 죄를 지어내지만
하나님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열심으로 언약을 이루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의를 세우시고
우리를 다시 세우심

룻기 4:22 오벳은 이새를 낳았고,
이새는 다윗을 낳았다.

룻기 다음으로 이어지는 성경은
사무엘상 의 이야기
= 다윗의 가정을 세우심

하나님은 그분이 신실하시기에
우리가 아무리 못나도 그분은 묵묵히
그리스도의 의를 통해서
우리의 집/일생을 만들어 가십니다

* 그런 새벽을 소망케하는 말씀, 룻기

이 모든 귀결의 끝엔 그리스도가 계시다
다양한 삶이 있더라도,
그분의 구속하심으로
섬세한 그분의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심 알자

룻기4 성경은 항상 크게 2가지 무대를 통해서 하나님

룻기4
성경은 항상 크게 2가지 무대를
통해서 하나님의.이야기를 전달함
공간, 시간

룻기의 공간적 이동
– 길,밭, 타작마당, 성, 집 으로 스토리이동
(성 이중성- 성밖노출,헐벗음 성안-안전,보호)

인류는 끝없는 전쟁을 하는 이유는
안정과 안식을 지키기 위함이다
안식을 위해 안식을 포기함

창세기에 하나님께서 처음으로
주신 축복이 안식인 걸 잊어버린다.
7일째 주어진 안식=복된 날

인류의 비극
안식이 깨어지고, 흔들려 죄가 들어와
불안,공포가 임했다.
거꾸로 인류는 안식을 지키기 위해
전쟁을 치러야만 한다.

여호수아 1:13 “너희는 여호와의 종 모세가 너희에게 명령하여 말하기를 ‘여호와 너희 하나님께서 너희에게 안식을 주시고 이 땅을 너희에게 주셨다.’ 라고 한 말을 기억하여라.

* 가나안에 인도하신
궁극적인 이유/목적
-안식케 하기 위함

안식을 주시기 위해
이 과정 속에 끊임없는
전쟁과 싸움이 있었다.

여호수아 23:1
여호와께서 …안식을 주신 지
오랜 세월이 지났으며,

여호수아 23:3 너희는 여호와
너희 하나님께서
너희를 위하여 이 모든 민족에게
하신 일을 다 보았으니,
여호와 너희 하나님은
너희를 위해 싸우신 분이시다.

* 우리의 안식을 위해
싸우신 하나님이었다

사사기
* 마노아=안식(삼손의 아버지)
인류가 끊임없이 안식을 유지하기 위해 누군가는 싸워야 한다.

창세기에
안식을 위해 안식일을 지정하사 안식케하셨지만 죄로 인해 안식이 깨져버렸다. 여전히 세상사람은
안식을 누리지 못한 체 살고 있다.

룻기의 시간의 흐름
– 황혼부터 새벽까지
(창조의 첫날은
저녁이되고 아침이되)

– 인생의 밤을 맞은 나오미
베들레헴을 떠난 후부터
혹독한 대가를 치룸

-밤은 원래 하나님이 눕고 쉬고
안식하라 만들어논
하나님의 공간이다.

* 룻이 보아스 옷자락 끝에 누움
룻의 안식을 위해
누군가는 일어나야 했다
보아스가 잠 중에 일어나
이 여인에게 아침까지
있을 것을 권면함
(이장면은 구원의 그림)
보아스= 하나님의 대리자
예수님의 가계자가 되고

* 보아스는 신실하고 성실하니..
-주님은 보아스를 통해
끝까지 일을 이루실 때까지
우릴 위해 성실하고 신실하심을
보여주심

– 보아스가 기업무를 자의 책임을 짐
룻의 안식을 위해 끝까지 쉬지않고
일함 (예수님의 모습)

하나님께서 홍해를 가르고
밤새도록 쉬지않고 동풍을 불게
함으로 마른땅을 걷너게 함

우리의 안식을 위해
밤새 쉬지않고 일하시는 주님

우리가 해야할 것은(신앙)
하나님을 더 알고
사랑하고 의지하는 것이다.

여호와의 날개 밑 = 카나프

룻3:9 당신(보아스)의 옷자락
/ 후에 룻의 겉옷으로 전달된
6번 부어진 곡식이 가득 차
나오미에게 전달된다

-더이상 가망이 없는 나오미에게
후에 이방여인 룻이 보아스를 통해
다윗의 집안이 일어나게 되고
예수그리스도가 오심
참된 안식의 주인으로 오심

– 룻기는 인류가 마지막으로
돌아갈 길은 알려주는 책

-예수 그리스도 참된 안식이
있는 분에게 돌아가자

* 하나님의 은총에 기대에 사는
전후무후한 참된 안식을 풍성히
누리는 순례자가 되길 바랍니다.

룻기3 나오미와 룻 베들레헴 입성 보아스 = 부호,

룻기3

나오미와 룻 베들레헴 입성
보아스 = 부호, 땅을 많이 가진 자
늙은 나오미에게
인간의 예의를 잃지않는 룻

* 신앙의 성숙도는
인간에게 어떻게 하는 가
특히 막 할 수 있는 사람,
약자에게 행동하는 태도이다.

* 항상 은혜의 굶주림 있어야 한다.
사소한 분야에서도 은혜없으면
안된다는 태도가 필요하다.

* 은혜의 착각 – 하늘에서
떡이 떨어지길 기다리고
아무것도 안해도 얻을 수 있다.

*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려면
성실해야한다. 부지런해야한다.
우등한 것보다 개근이 더 중요하다.
성경에서 나타난 일관된 흐름이다.

3절 이삭줍기 시작
( 바닥까지 내려간 심정)
죽이면 죽겠다는 마음으로
자존심,체면 내려놓고 구하는 은혜태도

은혜란 내미는 거지 손과 같다(D.L무디)
자존심의 반대는 은혜이다

우연히~만난 보아스..

* 과연 우연일까?
우연은없다 오직 하나님의 섭리
이웃과 사람과 만남을 통해 역사하신다.
인생의 경영에 주님의 세밀한 계획이 있다.

마침 보아스가….
드디어 만남이 이루워진다
(님도보고 뽕도 잡고)

* 보아스가 왜 왔을까?
하나님의 마침,적실한 타이밍

하나님의 타이밍은 오묘하고 기막히다
늦지도 빠르지도 않고 정확하다
하나님의 타이밍을 믿고 기다려야한다.

바둑50수를 헤아릴 수 있다.
복귀할 때 모든 수를 돌아올 수 있듯
처음부터 아시는 주님

** 신앙은
치성을 드리는 것이 아닌
힘써 여호와를 아는 것이다.

두사람의 만남
하나님의 긍휼하심으로 이루어짐

레위기 10장
굶어죽지 않도록 과부,거지들이
떨어진 이삭을 다시 걷지 않고
그들이 가져갈 수 있게 허용한다.

* 말씀을 듣다보면 얻어 걸릴 수 있다.
내 마음에 무의미하게 쌓여있는듯 하지만
결정적으로 내 안에 역사한다

12절
보아스를 통해 주 날개아래 머물다
카나프=보아스의옷자락

찬송가 419장은
커싱 목사님 – 성대무리로
설교를 못하게 되고 그 이후로
더 하나님과 깊이 묵상하여
주옥같은 말씀을 적고
찬양사역자 생키 작곡으로
만들어짐

419장 가사
1. 주 날개 밑 내가 편안히 쉬네
밤 깊고 비바람 불어쳐도
아버지께서 날 지켜주시니
거기서 편안히 쉬리로다
2. 주 날개 밑 나의 피난처 되니
거기서 쉬기를 원하노라
세상이 나를 위로치 못하나 
거기서 평화를 누리리라
3. 주 날개 밑 참된 기쁨이 있네
고달픈 세상 길 가는 동안
나 거기 숨어 돌보심을 받고
영원한 안식을 얻으리라
 



주 날개 밑 평안하다


그 사랑 끊을 자 뉘뇨


주 날개 밑 내 쉬는 영혼


영원히 거기서 살리

주님의 은혜를 구하는 삶을 살되
인간의 부지러함을 놓치지 않아야
한다.

룻기2 (1:6-14) – 소망이 없는 집안 계대

룻기2 (1:6-14)

– 소망이 없는 집안

계대의 혼인법_ 다시 나오미가 결혼 해
사내아이가 나면 성인이 되면 과부가 된 형수와 결혼하여 자손을 이어야 한다

대가 끊어짐 /폐가, 가문이 끊어진다는 의미

오늘의 말씀 키워드 2가지
1) 듣고
2) 돌아오려하여 (10번 반복됨)

* 성경반복되는 경우 키워드가 됨

하나님이 하시는 상식적인 방법
– 늘 우리에게 듣게 하시는 주님
은혜 입은 사람은 심장에 충격을 줘 깨닫게함
소식, 소문, 지나간 말 처럼 듣는다

예1) 문둥병에 걸린 나아만 장군이 노예로 끌려온 여자아이가 지나가는 말을 무시하지 않고 듣게되어 병을 고침

예2) 아담은 잘못된 소리를 들음
아내 하와와 뱀의 소리를 듣고 스스로 착각함

하나님이 경영하시는 방법
잘듣는 귀가 복된 귀입니다

엘리멜렉과 나오미 소문을 듣지만
하나님의 흘려주신 소문을 들은 건 나오미!!

예3) 한나가 아이를 갖지못하여 슬퍼울 때
제사장 엘리가 술 끊어라 라고 전함
(말씀이 끊어지면 헛소리를 하게됨)

예4) 홍해를 걷넜다는 소리를 가나안사람이 들음 라합만이 너희 하나님의 소릴 들었다 나를 구해달라

* 영적인 공동체의 진정한 문제
-믿음은 들음에 난다
– 순례길을 가는 동안 잘 듣기를 !!!

* 하나님께 구하여할 은혜
꼭 들어야 할 소리와 볼 것을 보게 하소서
여기서 끝나는 게 아니라 들으면 움직여야
한다. 기독교는 말씀을 듣고 내 삶의 새겨야 함

나오미의 가장 강한 모티브 =돌아가려하여

룻기는 효도를 해야만 하는 자주나오는 말씀이나 더 깊은 뜻이 있다

– 룻1:7 유대땅으로 돌아가려하여
– 룻1:14 오르바는 다시 모압으로 룻은 붙잡고 어머니와 함께 지내려 함/ 종교와 연관되어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고
(룻의 신앙고백)

떠들다=짐승이 그르렁거림 조롱과 비아냥 거림 나오미=희락 기쁨 즐거움 마라=고통

-룻1:21 비어돌아오게 하게
=남편,두아들을 잃어버림

– 룻1:22 추수를 시도함
기독교 = 은혜

사람의 평가기준
– 기도와 신앙으로 판단하나 은혜가 필요함

* 우리의 시작과 마침도 은혜이다.
기적은 끝나고 상식이 시작된다.
첫 유월절 / 심지도 땀흘리지도 거두지도 않음

* 룻이 짐으로 느껴진, 혹 같은 상황에서
주님께서 감춘 그림

– 기능/수단으로 생각하여 무례한 행동을 함
– 인생의 혹 처럼 붙은 (여인을) 통해 인류가 먹고
살게 될 통로가 됨

– 약자를 무시하지 말라/사람에게 대하는
태도가 내 신앙태도임 (아랫사람,약자)
인간의 이해 및 겸손함을 나타냄
-하나님은 겸손한 자를 하용하신다.

– 은혜로 가는 다리 –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음성을 듣나니….우리의 걸음 행보하나 하나가 아버지의 길로 돌아가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