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온 신명기 11:1~7

청온 신명기 11:7 여호와께서 하신 이 모든 큰일을 너희가 너희 눈으로 보았다.”

기도 :
기적의 하나님,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수많은 이적들이 있음에도, 그것을 항상 보고 체험하면서도 우리는 다시 주님의 은혜를 잊고 살아가는 어리석은 죄인임을 고백합니다. 홍해를 가르시고, 애굽의 모든 위협으로부터 강한 손으로 보여주셨던 놀라운 은혜를 항상 자각하며 살아가게 하소서.

하나님의 기적은 하나님이 정말 살아계신다는 걸 믿게 해
그런데 사람의 기억력이란 건 대단히 믿을게 못돼서
금새 잊어버리거나 다른 식으로 변하기도 해.
예전에 누가 큰 병에 걸렸는데
기도하다가 하나님이 낫게 해주셨어. 그때는 하나님께 너무 감사하고, 사람들 앞에서 간증도 하기도 했어
그런데 시간이 지나자 그걸 다 잊고는 그 병은 하나님이 낫게하신게 아니라고, 다른식으로 말하고다녔어. 거기다 결국엔 하나님 안믿고 죽었어.

하나님은 진짜 살아계셔. 그런데 자꾸 믿지 못하게 누군가 방해해. 적러놓지 않으면 기억도 자꾸 왜곡되게 되고.
그래서 말씀을 읽어야돼. 하나님 말씀을 읽어서 다시 생각나게 해야 잊지 않을 수 있어.
우리 모두 말씀을 읽자. 하루에 조금이라도 읽고 살자.
세상 말들이, 읽을 거리가 너무 많아서 혼란스러워. 하나님 말씀을 보고 마음 정리하자

즐거운 하루 보내렴~^^

[최보식이 만난 사람] “戰場의 맥아더는 몰랐다… 트루먼 대통령의 政治的 목적을” [88세에도 대학 강의하는 ‘군사학 代父’ 이종학 선생]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6/06/19/2016061901842.html

[88세에도 대학 강의하는 ‘군사학 代父’ 이종학 선생]

“1947년 美 대통령 특사로 온 웨드마이어 장군의 보고서

‘한국군 증강과 美軍 주둔…’ 묵살·발표 금지됐다”

“6·25 전날인 24일 밤, 군 수뇌부 2차 술자리까지…

북한군 밀고 내려왔을 땐 대부분 곯아떨어져 있었다”

이종학 선생은 직접 차를 몰고 신경주역으로 마중을 나왔다. 88세 노인이 운전하는 차를 타니 미안하면서 걱정도 됐지만, 그는 이렇게 안심시켰다.

“나는 1957년부터 운전을 했습니다. 지금도 충남대에 2주에 한 번 강의를 갈 때마다 역까지 차를 몰고와 KTX를 타고 갑니다.”

이종학 선생은

이종학 선생은 “전쟁은 나라의 생사와 존망과 관계되니 깊이 연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보식 기자

경주 외곽에 있는 한옥 살림집에 도착하니 ‘서라벌군사연구소’ 현판이 붙어 있었다. ‘연구소’라고 해봐야 그 혼자다. 하지만 그는 한국 군사학계의 대부(代父)다. 국내에서 처음 ‘전쟁론’을 가르쳤고, 군사학 이론 체계를 정립했다. 문교부가 승인한 첫 군사학 정교수(1980년)라는 타이틀도 있다. 그의 역할로 현재 10여개의 대학교에 군사학부가 개설돼 있고, 29명의 박사도 배출됐다.

“학창 시절 ‘퀴리부인’ 전기를 읽고는 화학자 꿈을 키웠습니다. 하지만 6·25가 발발하면서 공군사관학교(3기·1951년)에 입학했지요. 생도 3학년이었을 때 ‘직업 군인은 사람을 죽이는 게 본업이 아닌가’ 하는 회의가 생겼습니다. 신경쇠약으로 마산공군병원에 입원했어요. 넉달간 병원 생활을 하고 돌아왔어요. 용케 졸업과 임관은 했습니다.”

그는 통신장교로 근무하다, 대위 때 공사 교관으로 발령났다.

“학생들에게 가르치기 위해 그때 처음 ‘손자병법’을 읽었고 첫 구절이 나를 감동시켰습니다. ‘전쟁이란 나라의 중대한 일이다. 생사존망과 관계되니 깊이 연구해야 한다(兵者國之大事 死生之地 存亡之道 不可不察也)’라고 했어요.”

―왜 감동을 느꼈습니까?

“전쟁을 단순히 사람을 죽이는 학살의 개념으로만 알았던 내게 ‘전쟁은 국가의 대사(大事)로 깊이 연구해야 한다’고 했으니까요. 클라우제비츠(1780~1831년·프로이센 전략가)의 ‘전쟁론’에서도 큰 영감을 받았지요. ‘전쟁은 정치의 연장선이다. 목표를 초과하는 전쟁은 더 이상 성공할 수 없는 무익한 노력일 뿐만 아니라 적의 반격을 유발하는 유해한 노력’이라고 했어요. 무조건 살상(殺傷)만이 전쟁의 목적이 아니라는 겁니다. 내가 독학한 ‘손자병법’과 ‘전쟁론’을 번역해 교재로 썼어요.”

―’손자병법’이나 ‘전쟁론’은 교양 수준인데, 그 시절에는 아니었던 모양이군요.

“대구 헌책방에서 우연히 클라우제비츠의 영어 번역본 ‘전쟁론(On war)’을 발견했어요(서재에서 갖고 나온 그 헌책에는 ‘1957년 7월 18일’ 구매 날짜가 적혀 있었다). 내가 미국보다 더 일찍 가르쳤던 셈입니다. 미국에서 생도들에게 ‘클라우제비츠’를 가르친 것은 베트남전(戰)에서 철수한 뒤였어요. ‘전투에서는 안 졌는데 왜 전쟁에서 졌을까’ 하는 반성에서 비롯됐습니다.”

―선생께서 강의를 할 때만 해도 국내에는 ‘군사학’ 개념이 전혀 없었습니까?

“총 쏘는 사격이나 군사훈련만 했지, 군사학은 전혀 몰랐고 교수진도 없었어요.”

―군사학은 무얼 가르치는 겁니까?

“우선 ‘전쟁이란 무엇인가’ 하는 전쟁의 본질이지요. 그리고 어떻게 싸워 이기느냐와 관련된 전략·전술이지요. 또 과거에 있었던 전쟁사(史)를 가르칩니다.”

―한마디로 군사학은 과거 전쟁 사례 연구를 통해 얻어진 지식 체계라고 정의하면 되겠습니까?

“그렇습니다.”

―과거의 어떤 전쟁을 가장 많이 연구했습니까?

“당연히 6·25전쟁이지요.”

―군사학 관점에서 6·25를 접근할 때 어떤 대목이 가장 흥미롭습니까?

“한때 시끄러웠던 ‘누가 일으켰느냐, 북침이냐 남침이냐’ 논쟁은 소련의 비밀문서가 해제되면서 규명이 됐습니다. 내가 흥미를 갖고 있는 대목은 ‘6·25가 왜 일어났느냐?’는 겁니다.”

―김일성의 한반도 적화(赤化) 야욕 때문이라는 게, 상식 아닌가요?

“그건 맞습니다. 하지만 그런 야욕이 있어도 남한의 군사력이 대등했다면 쉽게 전쟁을 일으킬 수 없었고, 전쟁이 그렇게 확대되지 않았을 겁니다. 1947년 트루먼 미(美) 대통령의 특사로 한국을 방문한 웨드마이어 장군이 ‘북한군에 비해 남한 군대가 너무 약하다. 빨리 증강해야 하고 미군은 당분간 주둔해야 한다’는 보고서를 올렸습니다. 이 보고서는 묵살됐고 발표 금지가 됐습니다.”

그는 서재에서 자신이 번역한 ‘웨드마이어 회고록’을 들고 왔다. 웨드마이어(1897 ~1989)는 제 2차 대전에서 ‘승리 계획’을 수립한 미 육군참모본부의 전략가였다. 미국이 전쟁에서 이기려면 병력, 화물 수송용 선박, 항공기, 훈련 시설은 얼마나 필요하고 어떻게 동원할지 등의 계획을 세웠던 것이다. 그 뒤 그는 중국 방면의 미군사령관 겸 장제스(蔣介石) 총통의 참모장을 역임한 뒤 대장으로 예편했다. 그가 미 군사전략의 이면(裏面)을 담은 ‘웨드마이어는 보고한다(Wedemeyer reports!)’를 출간한 것은 1958년이다.

“이 책의 존재를 알고 1970년 웨드마이어 장군에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그가 서명을 해 보내주었고 번역 출판도 허락했어요. 하지만 국내 여건을 고려해 그동안 번역을 미뤘다가 2년 전 출간했습니다. 이 책에는 트루먼 대통령에게 올린 보고서가 그때 왜 묵살됐는지에 대한 설명은 없었습니다. 다만 6·25에 대해 ‘피비린내 나는 무익한 전쟁(bloody, futile Korean war)’이라고만 썼습니다.”

―이는 어떤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겁니까?

“미국 정부가 사전에 막을 수 있었던 한국전쟁을 막지 않아 불필요하게 숱한 미군들의 목숨을 앗아갔다는 뜻입니다. 웨드마이어 장군은 그때 자신이 군복을 벗고서라도 보고서를 공개 못한 것에 대해 ‘중대한 과오를 범했고 국가에 대한 의무에 태만했다’고 후회했습니다.”

88세에도 대학 강의하는 ‘군사학 代父’ 이종학 선생(오른쪽)

―모든 보고서가 채택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아예 보고서 공개를 금지시켰습니다. 그 뒤 이승만 대통령이 ‘한반도의 공산주의 위협은 미국의 점령정책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군사 원조를 요청했으나 역시 거절당했습니다. ‘진해를 미 해군기지로 제공하겠다’는 제안도 안 받아들였습니다. 1949년 미군을 철수시켰고, 곧이어 ‘애치슨 라인(한국과 대만은 미국의 방어선 밖에 있음)’이 선포됐습니다. 이것이 북한에 남침 빌미를 제공해준 겁니다.”

―트루먼은 6·25가 발발하자 즉각 전쟁에 개입했습니다. 그게 우리를 구하지 않았습니까?

“그는 의회의 승인도 받지 않고 신속하게 전쟁에 개입했습니다. 그전까지의 자세와는 확연히 다릅니다. 이 때문에 ‘트루먼이 6·25에서 달성하려는 정치적 목적이 무엇이었을까’를 연구하게 됐습니다.”

―트루먼 회고록에는 ‘한반도가 공산 세력의 수중에 떨어지는 걸 방치하면 미국과 가까운 나라들까지 계속 유린될 것’이라고 나옵니다. 공산 세력으로부터 민주 진영을 지키겠다는 트루먼의 정의감(正義感),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과 다른 게 있습니까?

“맥아더 장군의 회고록에는 ‘나는 이기기 위해 전쟁을 수행했지만 한국전은 전혀 다른 양상으로 진행됐다’고 나옵니다. 중공군의 보급로를 끊기 위한 맥아더의 만주 폭격 등은 트루먼 정부에 의해 제동이 걸렸습니다. 맥아더는 ‘사령관이 병사의 생명을 지키고 부대의 안전을 도모하기 위해 자신의 전투력을 사용하는 걸 금지당한 경우는 미국 전쟁사에서 유례없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그건 맥아더의 입장이고, 오히려 제3차 대전으로 확전되는 것을 막은 트루먼이 옳았다는 게 주류 견해입니다.

“바로 그 점입니다. 맥아더가 트루먼의 정치적 목적을 몰랐던 겁니다. 미국은 한반도에서 공산 세력 축출이 목표가 아니었고, 현상 유지를 하는 ‘제한 전쟁(limited war)’에 목표를 뒀던 겁니다.”

―트루먼의 정치적 목적은 무엇이었습니까?

“2차 대전이 끝난 뒤 전쟁에 동원됐던 병사들은 대부분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미군은 거의 해체되다시피 했습니다. 하지만 세계 평화가 이뤄진 게 아니라 ‘소련’이라는 더 막강한 적(敵)이 나타났습니다. 미국 내 분위기로는 군대와 군사예산 확충, 방위 산업 육성을 꺼낼 수가 없었습니다. 트루먼에게는 군사력 증강을 위한 카드가 필요했습니다. 한반도에서 제한 전쟁을 원했을 겁니다.”

―트루먼이 미국 국익을 위해 한국전쟁이 일어나기를 기다렸다, 이건 ‘음모론적 시각’인데요.

“오해받을 가능성이 있지만, 사실에 근거한 내 가설이니 동의 여부는 다른 문제입니다.”

―또 어떤 점에 흥미를 갖고 있습니까?

“왜 국군이 초반에 완패를 당했느냐는 겁니다. 사흘 만에 서울이 점령됐지 않았습니까. 당시 5~6월 전쟁 위기설이 파다했고, 구체적 정보가 보고됐습니다. 하지만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군 수뇌부에서 일어났습니다.”

6·25 직전의 미스터리한 점을 요약하면 이렇다. ①6월 10일 군 수뇌부의 대규모 인사이동으로 대부분 사단장이 부대를 장악할 시간을 갖지 못했다. ②6월 11일 발동한 비상경계령을 23일 24시를 기해 해제했다. ③6월 24일 38선 근무 병력의 3분의 1을 휴가 보냈고, 나머지 병사들도 외출·외박시켰다. ④6월 24일 저녁에는 육군장교구락부 개관 축하 파티를 열어 총참모장(채병덕) 이하 군 수뇌부와 전국 주요 지휘관이 밤늦게까지 술을 마셨다. 다음 날 북한군이 38선을 밀고 내려왔을 때 대부분 곯아떨어져 있었다.

“당시 파티는 2차로 국일관에 가서 새벽 두시까지 계속됐어요. 술값을 연합신문 주필 정국은(鄭國殷)이 냈습니다. 그는 휴전협정 직후 간첩 혐의로 체포돼 여섯 달 만에 1954년 초 사형당했어요. 문제는 그의 재판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는 겁니다. 군내 어느 세력이 말소한 겁니다.”

―이는 무슨 뜻을 담고 있는 겁니까?

“6·25 당시 군 수뇌부에서도 북한과 결탁했거나 조종을 받은 이들이 있었다는 뜻입니다.”

이종학 선생은 군에서는 진급을 못 해 중령으로 예편했다. 1987년 국방대학원 교수직도 그만두고 경주로 내려올 때 그는 서울 집을 군사학발전기금으로 공사(空士)에 내놓았다. 2003년 군사학 석사 과정이 개설된 충남대에 군사학진흥기금으로 강원도 임야와 장서 1만권을 기증했다. 그는 역서 및 공저를 포함해 43권의 책을 썼다.

그는 “축구 경기처럼 인생은 후반전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청온 신명기 7:1~5

청온 신명기 7:1~5
7:5 그러므로 너희는 오직 그들에게 이렇게 하여라. 그들의 제단들을 허물고 그들의 기둥 우상을 부수며 그들의 아세라 목상을 찍고 조각한 우상을 불살라라.

기도: 사랑의 하나님, 세상에 의해 변화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변화시키는 복음의 능력으로 무장하기 원합니다. 죄와 싸워 승리하는 하루가 되게 하소서.

죄와는 적극적으로 싸워야만 극복할 수 있어. 죄짓게 하는 조건을 가만 놔두고, 참고 이기려고 하면 결국 지더라. 성경에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피하리라” 라는 말이 있어. 마귀는 똑똑하기 때문에 적당히 넘어가려고 하면 이리저리 휘둘리다가 결국 지고 말고 오히려 예수님 이름으로 대적해야 피해간대. 죄에 대적하는 방법은 뭐가 있을까.
죄짓게 하는 조건들을 적극적으로 없애고 입술의 말로 선포하는거야.
TV를 너무 봐서 다른 거 못한다면 TV를 방에서 치워버리고,
자꾸 미워지고 질투나는 죄가 들어온다면 “나는 예수님 이름으로 사랑하겠다. 밉지 않다. 용납해준다” 이렇게 입술로 선포하고,
자꾸 생각이 부정적이 되면 “예수님 이름으로 부정적인 생각을 묶겠다. 이 생각은 내 것이 아니다. 나는 긍정적인 사람 밝은 사람이다.” 이렇게 하면 될 것 같아.

선생님도 그렇게 해서 죄를 대적할께
즐거운 하루 보내렴. 빗길 조심하고

청온 신명기 6:10~19

청온 신명기 6:10~19
6:18 너는 여호와 보시기에 올바르고 선한 일을 하여라. 그러면 네가 잘되고, 여호와께서 네 조상에게 맹세하신 그 아름다운 땅에 들어가 그것을 차지하게 될 것이며,
6:19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분께서 네 앞에서 네 원수를 모두 쫓아내실 것이다.

기도: 사랑의 하나님, 내 인생이 평안하고 순탄할 때일수록 주님을 더 사랑하게 하시고, 주님을 향한 마음이 더 커지게 하소서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선한 일을 하라셔.
내 생각이 아니라 하나님이 보시기에 바르게 행해야겠다. 말씀대로. 그리고 날 지켜주시는 분이 하나님인걸 잊지말고..

즐거운 하루 보내렴~^^

청온 신명기 4:36~40

청온 신명기 4:36~40
4:40 오늘 내가 너에게 명령하는 그분의 규례와 명령들을 지켜라. 그러면 너와 네 자손이 잘살게 되고, 여호와 네 하나님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서 오래오래 살 것이다.”

기도: 사랑의 하나님, 오늘도 주닌의 계명을 읽고 지켜 행하면서, 주님과 연결된 하루를 보내기 원합니다. 주님을 기뻐하고 즐거워하게 하소서

하나님은 하늘에서도 하나님이시고 땅에서도 하나님이신 걸 알려주시려고(39절) 하늘에서 음성을 들려주시고 땅에서도 불가운데 말씀을 주셨다고(36절) 하셨어
하나님은 어디서든 유일한 신이셔. 집에 가든, 학교에 가든, 교회에서든, PC방에서든 노래방에서든, 강에서도 산에서도 외국에서도.
그러므로 어디서건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라고 하셔. 우리도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대접해드리자. 어디서건. 숨기지 말고 말씀을 지키자.

즐거운 하루 보내렴~

청온 신명기 4:32~35 14:35

청온 신명기 4:32~35
14:35 그러나 네게 이것을 보여 주신 것은 여호와만이 참 하나님이시고, 그분 외에 다른 신이 없음을 네게 알게 하시려는 것이다.

기도 : 사랑의 하나님, 주님이 내 진정한 만족이자 공급처, 피할 바위가 되십니다. 오늘도 강한 손과 펴신 팔로 나를 보호하사,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소서

신명기가 신신당부란 뜻이라고 얘기했었지? 모세할아버지가 죽기전에 당부한 말씀이야.
당시엔 하나님이 큰 기적 행하셨던 걸 본 사람들이 살아있었어. 하나님이 홍해를 가르신걸 보고, 불 가운데서 직접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거 듣고.. (물론 매일 새벽 만나가 내려오고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보호해주셨지만)
모세 할아버지의 당부는,
그런 기적을 겪게 하신건 하나님을 믿으라는 뜻이란 거야.
하나님이 기적을 주시는 데는 여러뜻이 있겠지만 그 기적을 통해 하나님이 진짜 살아계시구나 알고 그 하나님만 믿으라시는 뜻이 있어.
내게도 그런 기적의 경험이 있어. 그리고 그 기적이 계속되진 않았어. 어느 순간부턴 하나님을 기적 없이 믿어야 해. 하나님은 기적 대신 성경말씀으로 얘기하시니까.

그래서 모세 할아버지가 기적을 얘기해주면서 율법을 주고 말씀을 주신거야.

모세 할아버지가 죽고 여호수아가 백성을 인도할때는 요단강을 가르고 건너갔어.
이때는 모세처럼 바다를 향해 지팡이를 뻗은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있는 언약궤를 진 제사장들이 먼저 강물로 찰박찰박 걸어갔어. 그랬더니 강이 갈라진거야.
모세대신 말씀이 앞서간거야.
그리고 하늘에서 오던 만나도 그치고.
기적에서 말씀으로.

우리들도 말씀 잘 읽고 믿음을 가지자.

즐거운 하루 보내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