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워셔(54) 목사가 지난주 한국을 방문하고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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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워셔(54) 목사가 지난주 한국을 방문하고 돌아갔다. 그는 경기도의 한 교회에서 열린 사경회에서 5일 동안 ‘선명한’ 복음을 전했다. 미국 남침례교 순회 설교자이면서 한 선교단체 대표를 맡고 있는 워셔 목사는 지금 전 세계적으로 영향을 주고 있는 목회자다. 이미 유튜브를 통해 그의 메시지를 접한 한국인도 적지 않다.

찰스 스펄전과 마틴 로이드 존스에게 영향 받았다는 워셔 목사는 정곡을 찌르는 메시지를 가감 없이 전한다. “당신은 이 세상에 속고 있다” “그런 기독교는 없다” “당장 그만두라” 등 격정적인 언어를 사용하면서 구원에 이르는 복음이 무엇인지를 알려주고 있다. 하나님의 능력을 구하며 세상이 추구하는 것과 동일한 축복 받기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일갈한다.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십시오! 모르시나요? 하나님 자체가 축복이라는 사실을요.”

이번 사경회에서 워셔 목사는 한국 교회에 몇 가지 숙제를 던졌다. 먼저 솔직하게 우리가 갈망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직시하는 것이다. 그는 말했다. “당신은 지금 무엇을 갈망합니까? 하나님과 복음을 갈망하냐고요. 복음을 제대로 알고 있습니까? 당신이 아는 복음이 정말 성경이 말하고 있는 ‘바로 그 복음’입니까? 그 복음을 치열하게 공부하고 있습니까?”

워셔 목사는 다수의 목회자들이 포함된 청중들에게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은 사라지고 교훈적 일화와 처세술만 들려주는 현대의 설교에서 과연 복음을 찾아볼 수 있는지를 물었다. 우리가 갈망하는 실체를 정직하게 들여다볼 때 스스로가 얼마나 복음에서 멀리 떠나 있는지를 알 수 있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던진 숙제는 생명을 걸고 성경을 읽는 것이다. 그는 크리스천들은 ‘광신적인 성경 추종자’가 되어야 하며 1년에 한 번이라도 성경을 체계적으로 읽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지금 시대의 설교자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부분만을 발췌하고 그것을 혼합한 뒤 수프를 만들어 성도들에게 먹이고 있습니다. 거기에 함몰되지 않으려면, 속지 않으려면 스스로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성경 안에 당신이 찾는 답이 있습니다.”

또 다른 숙제는 언제나 지난 2000여년간의 교회 역사를 생각하며 거기서 답을 찾는 것이다. 교회사를 공부하면서 오랜 교회 역사에서 나타나는 참된 하나님의 백성이 갖고 있는 공통점들을 숙고할 것을 촉구했다. 지금 이 시대에 널려있는 ‘거짓 선지자’들에게 속지 않으려면 교회사에서 지혜를 얻어야 한다는 설명이다.

이밖에 워셔 목사가 던진, 깊이 생각해야 할 숙제들이 많다. 그에 따르면 매일의 삶 속에서 번영과 명성, 성공이라는 우상숭배를 타파하며 하나님 자체만을 원하는 훈련을 해야 한다. “교회사를 되돌아볼 때 물질적 풍요는 한번도 당신의 자녀를 거룩하게 만들지 못했습니다. 지금 대부분의 크리스천들이 추구하는 일들이 가장 불경건한 일을 조장한다는 아이러니를 알고 있습니까? 참된 경건은 거룩을 이끌게 되어 있습니다.”

그는 이 땅에는 ‘교회라고 불리는 교회’가 있지만 그들 교회가 모두 진정한 교회는 아니라고 경고했다. 하나님을 즐거워하기보다 세상을 즐거워하는 크리스천들이 넘쳐 있는 교회는 교회라고 불리지만 교회가 아니라고 말했다. 우리는 하나님이 보시는 시각으로 사물을 바라봐야 하며 ‘영적인 남은 자(Spiritual Remnant)’ 들이 되어야 한다고도 언급했다.

워셔 목사는 “오직 하나님만을 갈망하라”는 말을 남기고 돌아갔다. 한국교회에 숙제가 남겨졌다. 진지하게 그 숙제를 풀어야 할 때다.

이태형 국민일보 기독교연구소 소장 thlee@kmib.co.kr

김광진 10월 17일 교통사고 합의요령이라고 합니다.

김광진
10월 17일
교통사고 합의요령이라고 합니다.

자동차보험회사의 보상담당직원들은 입사시부터 철저한 교육을 받습니다.

교육의 목적은 당연히 회사의 이득을 극대화하기 위한 것이며 그 내용은 법률, 심리학, 행정, 협상기술 등을 망라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언제나 하루종일 교통사고 가해자, 피해자와 만나고 밥 먹고 하는 일이 늘 그것인 관계로 풍부한 경험과 노하우를 가지고 있습니다.

보상담당직원들은 이렇게 완벽하게 중무장하고 있는데 비하여, 피해자들 대부분은 평생에 한두 번 당하는 일이므로 관련지식이 전혀 없고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정말 막막하기만 합니다.

그러나 “약자라고” 또는 “아는 것이 없다고” 해서 자동차보험사의 농간에 당하기만 하고 결국 치료도 못 받고 말도 안되는 쥐꼬리만한 합의금만 받고 끝내야 할까요?

절대로 아닙니다.

무조건 모른다고 하여 포기할 것이 아니라 조금만 공부하고 노력하면 자신의 권리를 제대로 챙길 수 있습니다.‘맞은 사람은 편안하게 두 발 뻗고 자고 때린 사람은 불안하여 밤잠을 설친다.’ 고 하였습니다. 맞은 사람은 피해자이며 때린 사람은 보험사입니다. 죄 없는 피해자가 당당해야 합니까, 아니면 죄를 저지른 가해자가 당당해야 합니까? 예를 들어, 서민인 내가 재벌집 망나니 아들한테 아무 이유 없이 폭행을 당해서 전치 4주 진단이 나왔다면 이런 경우, 하필 재벌집 아들이니까 내가 재수 없었다 생각하고 개값에 바로 합의해 주는 것이 당연한 일인가요? 절대로 아니지요. 당연히 그 망나니의 부모가 즉시 달려와서 피해자에게 무릎 꿇고 제발 선처해 달라고 빌어야 맞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당연히 교통사고 피해자가 큰 소리를 내야하며, 보험사는 피해자의 선처를 애걸복걸 부탁하며 바지자락이라도 잡으려 해야 하는 것이 본래의 당연한 이치입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뒤바뀐 갑을의 관계를 정당한 원래상태로 되돌려서 우리 피해자들이 억울한 일이 없이 당연한 권리를 행사할 수 있을지 알아봅시다!

1. 먼저 합의금액을 제시하시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보험회사는 법적으로 타당한 합의금이 대략 얼마인지 예상해 낼 수 있습니다. (만약 서로간의 합의가 이루어 지지 못한다면 법대로 하게 되는 것이고, 소송에 의하여 판사가 결정해주게 되는 것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험회사에서는 피해자에게 먼저 합의금액을 물어 봅니다.이것은 보험회사가 고도의 심리전을 쓰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만약 순진한 피해자가 아무것도 모르고 적은 요구금액을 대답하면 보험사는‘얼씨구나~ 땡 잡았네’ 하면서 그 금액 그대로 합의해 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보험회사 입장에서는 밑져야 본전이고 재수 좋으면 횡재할 수 있으니 일단 한번 찔러 보는 것입니다. 또한 사람의 마음이란 것이 일단 내가 내 입으로 스스로 오십만원이라고 언급하고 나면, 나중에 오십만원은 내가 잘 몰라서 너무 싸게 부른 거였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하더라도 왠만해선 오십만원보다 너무 높은 금액을 차마 부르지 못하게 되는 습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의 무의식 속에 나 스스로 실언을 했다라는 것을 인정하기 싫은 심리의 의지가 나도 모르게 작동하기 때문입니다.)

이게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아도 알면서도 당하는 거구요, 심리학적으로 증명된 원리입니다. 그러므로 피해자가 먼저 합의금액을 언급하시는 것은 좋지 않으며, 보험회사로 하여금 합의금액을 제시하게 하는 것이 좋습니다.

2. 보험회사에서 지정하는 병원에는 가지 않습니다.

보험회사 자문병원은 보험회사에서 자문료를 받기 때문에 그 곳의 의사들은 아무래도 보험회사 입장에서 피해자를 감정하게 되는 수가 많습니다.

3. 보험회사에 당당하게 대하십시오.

보험회사 보상담당자에게 쩔쩔매고 사정하는 피해자를 가끔 보게 되는데 참으로 안타깝고 어이가 없는 일입니다.

심지어 아직 다 낫지도 않은 분이 헐값의 합의 후에 저한테 치료받으러 오신 것이죠. 사연을 듣고 참 기가 막히더군요. 그래서 제가 합의취소(합의취소가 무조건 되는 것이 아니니 주의하시기 바랍니다.)를 시켜드리고 그동안 어떻게 기만당하신 것인지 앞으로 어떻게 해야할지 주욱~ 설명해드렸습니다.

그랬더니 이 아주머니께서는 정말 고맙다고 제게 큰 절을 하시면서이렇게 속은 내가 정말 바보같고 날 이렇게 가지고 논 보상직원이 너무 얄밉고 분하고 억울하여 눈물이 난다면서 우시더군요.

‘보험회사는 대기업이고 전문적 집단이고, 피해자는 혼자이면서 약하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다’ 는 생각이 드실수도 있지만, 오히려 그럴수록 피해자는 보험회사에 더욱 더 당당하게 얘기할 수 있어야 손해를 보지 않는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피해자가 자기 주장이 강하면 강할수록 보험회사에서는 피해자를 만만하게 볼 수 없게 되고, 따라서 그 피해자에게 더욱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을 것이며 합의금액의 산정에서도 장난치기 힘들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보험사는 약자에게 강하고 강자에게 약한 성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보험회사에 약한 모습을 보이게 되면 보험회사는 그 부분을 이용하여 어떻게 해서든지 싼 값에 합의하려고 시도합니다. 약자라고 해서 조금이라도 더 인심 써준다던가 하는 일은 절대로 없습니다.

4. 보험회사에서 흔히 써먹는 거짓말: 이런 말들은 무조건 거짓이라고 아시면 되겠습니다.

1) “병원에 입원하면 병원만 돈 벌어 주는 것이니 병원에 줄 돈 하루에 3만원씩 잡고 위자료 등 합쳐서 100만원 줄테니까 웬만하면 지금 퇴원 하시고 합의 하시죠.”

“퇴원하기 전에 합의해야 유리합니다. 입원기간이 길어지면 보상금 없습니다.”

“계속 침 맞으실거면 합의금에서 하루에 2만원씩 빼고 줄거니까 나중에 피해자님께서 받을 수 있는 돈은 별로 없으니 알아서 하세요.”

‘치료비와 합의금의 합은 일정하다’ 또는 ‘치료비와 합의금의 반비례한다’ 는 법칙이 과연 존재할까요?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치료를 열심히 받아야 합의금도 더 높이 요구할 수 있습니다.

만약 환자분이 병원에서 차지할 돈이 아깝다고 생각하여 엑스레이도 안 찍도 치료도 안 받고 버티면 보상담당자는 어떻게 나올까요?

‘아 우리 회사를 위해 병원으로 새나갈 돈을 절감하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하는 마음에서 절감하여 주신 금액만큼 피해자님께 되돌려드리겠습니다. 자~ 특별히 두둑한 합의금 받아 가십시오.’ 라고 할까요?

절대로 안 그렇습니다. 오히려 ‘치료를 받지 않은 것으로 보아 꾀병을 부리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라고 주장하면서 법원에 조정신청을 냅니다.

2) “우리가 제시하는 보상금으로 종결하시고 만약 아프시면 건강보험으로 치료받으면 됩니다.”


건강보험으로 치료받으시면 ‘사고로 인한 후유증이 아니라’ 고 스스로 인정하는 의미가 됩니다.절대로 이렇게 하시면 안 됩니다. 그리고 몇달후에 건강보험공단에서 전화가 올수있습니다. 자동차사고후 바로 치료맏으면 사고로인한것으로 보기때문에 합의금으로 치료받는것이 타당하다고 보는겁니다. 따라서 건강보험공단은 사고 이후 어느정도 기간동안 치료받은 치료비(공단에서 병원에 지급한 비용)을 환자에게 청구합니다.

3) “초진진단만 보상금에서 인정되고 추가진단은 불인 됩니다.”


거짓입니다. 무시하십시오. 추가진단도 인정됩니다. 의사 또는 한의사의 진단서에는 백프로 다음과 같은 단서가 붙습니다. 그 내용은 ‘ 단,초진 진단이며 추후 경과 관찰하여 추가적 진단 또는 치료기간의 연장을 요할 수 있습니다.’ 라는 내용입니다.

4) “합의에 불안하시면 향후 후유장해가 있다면 그 부분은 나중에 다시 보상해 드리겠습니다. 못 믿으시겠다구요? 그렇다면 여기 합의서에 명시해드리겠습니다.”

정말 보상해 줄까요? 당연히 안 해줍니다.

여기에 딱 속아 넘어가는 환자분들이 매우 많습니다. 왜냐면 말이 참 그럴 듯 하거든요.

‘피해자님~ 일단 합의금 얼른 챙겨가세요. 그리고 혹시나 아프시면 우리 회사가 치료비 부담합니다. 돈도 챙기시고, 아플까봐 걱정하실 것도 없고 얼마나 좋습니까? 제가 선생님 인상이 좋으셔서 특별히 후하게 쳐드리는 것이니 망설이지 말고 바로 도장 찍어주세요! 어서!’

이러면 우리 피해자 환자분들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아~ 신경 쓰는 것도 은근 귀찮은데 그냥 끊내버려? 합의 이후에도 책임지겠다는데.. 그리고 나한테는 특별히 후하게 쳐주겠다는데. 게다가 주위에선 겉만 보고 멀쩡한 것으로 착각하여 얼른 합의하고 끝내라는 무책임한 말을 무심하게 던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합의한 이후에 후유증이 발생할 시에는 책임지고 치료비를 지급하겠다.’라는 문구는 순진한 우리의 짐작과는 다르게 법적으로는 ‘그 후유증이 사고로 인한 것이라는 것을 피해자가 입증했을 때만 보상해야한다. 반대로 피해자가 입증하지 못하면 당연히 보상해줄 의무가 없다.’는 것으로 해석됩니다.

같은 말이라도 일상생활에서 통하는 의미와 법적인 의미는 하늘과 땅 차이가 날 수가 있지요. 이런 경우가 바로 그렇습니다.

환자분께서 나중에 내 몸의 불편함이 그 당시의 교통사고 때문이라는 것을 입증하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당연히 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의사, 한의사한테 가면 입증해줄까요? 그게 그렇지가 않습니다. 의사, 한의사가 문제일까요? 아닙니다. 아직 현대의학이 그 정도 수준까지 도달하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법원에서도 인정해줄 수가 없는 것입니다.

6) “변호사한테 위임하면 그들에게 좋은 일만 시키는 꼴이 되고 이것저것 떼고 나면 남는 것이 없습니다. 선생님께서 하루라도 빨리 합의를 해야 한 푼이라도 더 가져갈 수 있습니다. 지금 합의 합시다. 지금 합의하신다면 남들보다 특별히 생각해서 드리겠습니다.”

변호사들은 남는 게 있을 만한 경우에나 착수하지 변호사만 수임료 챙기고 고객은 남는 게 없을 정도의 경미한 건이라면 애초에 시작하지도 않더군요. 부상이 심한 경우에는 소송해서 받게 되는 금액이 보험사에서 제시한 금액의 10배가 되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남들보다 특별히 생각해서 준다? 정말로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5. 합의는 언제 해야 하는가?

교통사고의 소멸시효 기산점은 일반적으로 합의기간은 사고일로부터 종합보험 3년, 책임보험, 무보험차량, 개인보험 등 2년이므로 조급한 마음은 과감히 버리시는 것이 좋습니다.

좀 더 자세히 말씀드리면 보험사에서 병원치료비 지불보증 마지막 날로부터 소멸시효는 다시 시작되며, 또한 후유장해를 함께 받았다면 그날부터 시작되고, 그리고 가지급금을 받았다면 마지막 받은 날로부터 소멸시효 기산점은 시작되므로 보상직원과 비전문가의 사탕발린 말에 현혹되어 충분한 치료를 받지 아니하고 조기합의를 해서는 절대로안 될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부상부위를 충분히 치료하여 사고 이전 상태로 회복하는 것이며 후유장해가 남지 않도록 치료에 전념하는 것입이다.

자칫 잘못 그 유혹에 넘어가 조기합의를 끝내고 100-200만원 받고 합의서에 서명날인 해주었다가는 평생 동안 후회할 일이 비일비재하게 발생되고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아셔야 합니다.

피해자와 얼마나 싼 가격에 얼마나 일찍 보상합의를 끌어내느냐가 보상담당 직원의 능력이고 그런 직원에게 보험회사는 보너스와 승진을 주는 것입니다.

다 나은 줄 알았는데 합의도장 찍자마자 다시 아파오는 수가 있습니다. 거짓말 같나요? 아닙니다. 진짜 비일비재합니다.

사고의 충격으로 인한 손상부위가 아직은 통증을 나타내지 않고 잠복되어 있다가 나중에 튀어나올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완전히 통증이 없는 상태까지 치료받으시고 최소 한 달 이상 괜찮은 상태가 지속되는지 지켜보시고 계속 괜찮으시다면 그 때부터 합의 협상에 임하시면 되겠습니다.

6. 특인제도(초과심의)

보험회사는 순진한 사람에게는 회사의 내부적인 보상기준 보다 적은 보상을 해주고 반대로 뭔가를 알고 따지는 사람에게는 사내보상기준보다는 많고 소송하여 판결나는 예상금액보다는 적은 중간 액수에 합의할 것을 유도합니다. 이것을 “특인”이라고 합니다.

1)자동차보험회사의 보상직원들이 피해보상해줄 때 첫 번째로 제시하는 것이 회사보상기준에 의한 보상금입니다. 이를 보험회사 직원들은 규정에 의한 보상금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보험회사의 보상규정 또는 보상약관은 그 회사가 마음대로 만든 자체적인 기준일 뿐입니다. 당연히 객관적으로 타당한 잣대로 삼을 수 없으며,피해자에게 그 내용을 강제할 수 없습니다.

만약 피해자가 ‘법원의 예상판결액에 의한 보상을 해주지 않으면 소송하겠다’고 하면 보상직원은 시간을 좀 달라고 할 것입니다. 즉 본사의 허락이 없이는 예상판결액에 상당하는 합의금을 줄 수 없고, 본사의 승인을 받아야만 줄 수 있다고 할 것입니다.

2) 보험회사 보상직원에게

‘회사규정에 의한 액수는 더 이상 얘기하지 말고 특인이나 초과심의 올려 인정될 액수를 제시하라고 하면 그 말이 떨어지는 순간부터 피해자를 만만하게 보지 못하는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3) 특인으로 인정되는 액수는 예상판결액의 80% 정도를 제시함이 보통인데, 그 이유는 소송으로 갈 경우 소송비용과 변호사 수임료가 약20%정도 지출될 수 있으므로 소송하더라도 실제로 피해자가 받게 될 비용은 예상판결액의 80%정도 밖에 안 되니 그 돈에 합의하자고 하는 것입니다.

4) 특인제도에 의한 보상금도 실제 받을 수 있는 손해배상액에 터무니없이 못 미치는 수가 비일비재하므로 특인에 의하여 제시된 금액에 합의할 것인지 아니면 소송할 것인지는 신중하게 결정해야 할 것입니다.

5) 특인은 본래 예상판결액의 85-90%를 지급함으로써 소송까지 가지 않고 일찍 종결짓자는 좋은 취지입니다. 소송으로 갈 경우 원고도 변호사 비용과 조정이나 판결까지의 기간에 있어 부담스럽고 보험회사는 피고대리인에게 지급해주어야 하는 결코 적지 않은 변호사비용과 만일 조정으로 끝나지 않고 판결로 가게 될 경우 소송비용과지연이자를 다 물어주어야 하는 부담이 있기 때문에 특인제도는 피해자와 보험회사 모두에게 이익을 줄 수 있는 제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6) 그러나 보험회사가 특인금액을 부당하게 산정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첫 번째 문제점은 예상판결액을 산출할 때 쓰이는 공식이 법원과 다르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 문제점은 장해율 산정에 있어서 근거 없이 기왕증을 적용하고 영구장해를 한시장해로 적용하고 이것 떼고 저것 떼고 하다보면 남는 것은 쥐꼬리뿐이고 그 중에서 다시 80%에 끼워 맞추니, 결국 법원에 소송하여 인정되는 액수의 1/3 정도에도 못 미치는 황당한 사람의 몸값이 계산되기도 합니다.

7) 특인으로 끝낼 때에도 보험회사는 피해자에게 감사하다고 큰절을 올려야 합니다. 왜냐면 판결로 갈 경우 보험회사에서 피해자측의 소송비용을 모두 물어주어야 하는데 그것이 안 나가지요. 지연이자도 아낄 수 있지요. 그리고 소송시 주어야 할 보험회사측 변호사의 수임료를 안 주어도 되기 때문입니다.

7. 치료를 열심히 받아야 합의금도 잘 받을 수 있습니다. ********************

적을 알아야 전쟁에서 승리한다고 하지요?

보험사의 입장에서 생각해봅시다.

치료를 받지 않으면서 아프다고 합의 안 해주는 환자한테 합의금을 더 많이 줄테니 합의해달라고 할 필요가 있을까요? 당연히 없지요. 왜냐면 시간 끌어도 손해 볼 것이 없으니까요. 심지어는 치료를 안 받는 것으로 보아 꾀병이라고 주장하면서 법원조정신청을 내기도 합니다.

반대로 치료를 열심히 꾸준히 받는 환자한테는 합의금을 많이 주더라도 빨리 끝내는 것이 회사에게 이득이 되겠지요? 괜히 합의금 아끼려고 시간을 더 끌다가는 치료비가 점점 불어나서 회사 입장에선 더 큰 손해가 되겠지요.

그래서 보상담당자는 치료를 열심히 받는 환자한테는 합의금을 높게 줘도 팀장이나 사장님한테 깨지지 않습니다. 반대로 치료도 잘 받지 않는 환자한테 괜히 합의금을 많이 주었다간 팀장이나 사장한테 무능하다고 문책을 당할 것입니다.

8. 진단,치료 기록을 보험사에 넘겨주어선 안 됩니다.

보상직원이 서류를 들고 찾아와 사인을 요구할 때는 꼼꼼히 읽어보시되 ‘진료기록 열람 동의’ 부분에는 절대 사인해서는 안 됩니다. 이 자료를 가지고 자문병원 의사에게 유리한 판정을 얻으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9. 보상담당 직원으로부터 부당한 횡포를 당한 때는 어디에다 호소해야 할까요?

1) 전화해서 팀장을 바꾸라고 해서 잔뜩 진상을 부려준다.

2) 사내 감사실(민원실)에 전화해서 난리친다.

3) 금융감독원에 전화해서 사정을 이야기하거나 민원을 제기한다.


버스나 택시와 사고시는 (버스공제조합.택시공제조합) 국토해양부에 전화해서 사정을 이야기하거나 민원을 제기한다.

주일학교가 잘못 가르친 성탄절 [242호 특집 청소년

주일학교가 잘못 가르친 성탄절
[242호 특집 청소년 교회 교육을 다시 생각한다]
[242호] 2010년 11월 24일 (수) 16:30:48 김동문 yahiya@hanmail.net
교회 교육에서 절기 교육은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그러나 절기 교육은 주로 일회성 혹은 연례행사처럼 판에 박힌 모양과 내용으로 치러지곤 한다. 큰 고민도 없어 보인다. 성경적인 고민이 아니라 욕먹지 않을 정도의 절기 행사를 만들어 내야 하는 ‘직업적’ 고민에 빠지기도 한다. 성탄절이 다가오면 눈 내리는 크리스마스를 연상시키는 절기 장식은 물론, 서구풍의 구유 장식, 성탄 트리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성경과 거리가 먼 풍경이 변함없이 펼쳐진다. 교회 용품 코너에서 어렵지 않게 구입하여 부담 없이 장식을 한다. 익숙한 연례행사로서의 성탄맞이가 아닌 성경이 말하는 성탄의 의미를 오늘에 재적용하는 도전의 시간으로 성탄절 행사를 준비할 수는 없을까.

예수님은 ‘말’ 구유에서 태어나지 않았다

해마다 성탄절이 되면 언제나 등장하는 친숙한 그림이 있다. 아기 예수님이 말구유에 누워 계시고 그 주변에 말을 비롯한 양과 몇 마리 가축들이 마리아, 요셉과 함께 있는 그림이다. 그리고 목자들과 화려한 옷을 입은 동방박사 세 사람이 둘러서 있다. 배경이 되는 온 세상이 흰 눈으로 덮여 있다. 그야말로 화이트 크리스마스, 고요한 밤이다.

그러나 전통적인 성경 읽기가 아닌 사실적인 성경 읽기를 통해 성경이 말하는 성탄 이야기를 다시 읽어 보자. 

“예수님이 어디서 태어나셨나요?”
“베들레헴 말구유요.”

이것은 정확하게 틀린 대답이다. 예수님은 말구유에 태어나신 적도 없을 뿐더러, 우리가 생각하는 구유에 누워계셨던 것도 아니다. 성경 어디에도 예수님이 말구유에 태어났다고 말하지 않는다. “맏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눅 2:7)라고 적고 있을 뿐이다. 오해를 풀기 위하여 다시 팔레스타인으로 여행을 떠나 보자.

예수님 당시 팔레스타인 인구 현황에 대한 다양한 연구에 따르면, 당시 베들레헴 인구는 최대 300명 정도였다. 종교적 중심지 예루살렘은 거주 인구가 최대 3만 명이 되지 않았다. 예루살렘 거주자 가운데 절대다수는 제사장을 포함하여 레위인 등 성전에서 일하던 성전 관계자들이었다.

‘구유’ 이것은 일반 가정이나 숙박업소의 마구간을 의미하지 않는다. 소 외양간도 아니다. 베들레헴에서는 말이나 소를 키우지 않았다. 양이나 염소가 일반적이었다. 드물게는 나귀가, 아주 드물게는 낙타가 있었을지 모른다. 양이나 염소 우리는 울타리만 쳐져 있는 경우가 일반적이었다. 겨울철을 대비하여 종려나무 잎과 흙을 이용한 지붕을 씌운 우리가 존재하기도 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우리에는 천장이 없었다. “밖에서 밤에 자기 양떼를 지키”(눅 2:8)던 상황을 떠올리면 예수님의 탄생 시기는 눈 내리는 겨울철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 양의 우리는 엉성하게 나뭇가지로 울타리를 만든 경우가 일반적이다. 양의 우리는 높은 지붕이 있는 외양간이 아니었다. (사진 제공 김동문)

목자들은 주로 들판에서 생활을 한다. 목자라고 모두가 자영 목자라고 생각할 수는 없다. 예수님 탄생을 전후한 시기에는 고용 목자 즉 삯꾼 목자들이 더 많았다. 예루살렘의 돈 있는 이들의 가축을 키우던 이들이 많았던 것이다. 겨울철이 아니면 들판에서 꼴을 뜯기면서 양과 염소들과 함께 생활한다. 야외에 머물다가 비라도 지나가거나 추워지는 시간이면 몸을 피하고, 양이나 염소 등을 숨기는 공간들이 있었다. 석회암 산지에 생긴 자연 동굴 등이었다. 예루살렘이나 베들레헴 지역은 석회암으로 구성된 산지가 많다. 이 석회암 지역에는 여러 가지 영향으로 생겨난 자연 동굴이나 웅덩이가 많았다. 이런 곳에 지푸라기와 엉성한 물통과 먹이통을 놓곤 했다. 이런 공간은 때로는 추위를 피하거나 하룻밤을 지새울 수 있는 쉼터가 되기도 했다. 오갈 데 없었던 예수님 일행이 이런 공간이라도 얻을 수 있었다고 볼 수는 없을까?

   
▲ 양의 우리는 들에서 양을 칠때는 더욱 단순했다. 양의 우리에 지붕이 있는 경우는 제한된 계절에 제한된 용도일때 뿐이었다. (사진 제공 김동문)

마리아와 요셉에게 나귀는 없었다

요셉이 임신한 마리아, 만삭이 다 된 마리아를 나귀에 태우고 베들레헴으로 가는 장면을 쉽게 떠올리곤 한다. 그러나 마리아와 요셉에게는 자가용이 없었다. 오늘날의 자동차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당시의 교통수단으로 나귀와 말, 낙타를 꼽을 수 있다. 여기에 말이나 나귀가 끄는 수레가 더해질 수 있겠다. 당시 나귀는 고급 승용차에 해당했다. 흰 나귀는 아무나 탈 수도 없었고 지체 있는 이들의 소유였다. 화물수송이나 타는 용도로 나귀를 사용하던 이들도 서민이 아니었다. 그 시기에 말은 군수용품이었다. 로마 총독부나 주둔군의 고위직, 특별한 임무를 가진 병사들 외에는 말을 이용할 수 없었다. 낙타는 부자들의 장거리 출장용, 큰 농사를 짓는 이들의 화물수송용이었다. 평범한 서민들의 교통수단은 두 다리였다. 

마리아나 요셉 모두 ‘깡촌’ 나사렛 사람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다고들 말한다. 깡촌에서 사는 – 최소한 당시 거주지가 나사렛이라는 것을 고려하면 – 사실혼 상황도 아닌 가난한 부부가 나귀를 타고 베들레헴까지 오갔을 가능성은 없다. 마리아의 친인척인 사가랴가 제사장 집안이라고 하여 부자였을 것 같지도 않다. 부자였다고 한들 제사장이 사용하는 업무용 나귀도 개인 소유는 아니었을 것이다. 사가랴 집안이 마리아에게 나귀를 빌려 줬을 가능성 또한 없다.

마리아와 요셉은 걸어서 일주일 넘는 거리를 움직였을 것이다. 나사렛에서 베들레헴까지 ‘족장로’로 부르는 사마리아 산지 길과 유대 산지 길을 따라 이동했을 경우의 소요 시간이다. 그렇지만 당시 보편적으로 유대인들이 이 길을 사용하지 않았음을 고려한다면 족히 편도 2주는 걸렸을 것 같다. 어쨌든 이들은 걸어서 베들레헴으로 향했을 것이다. 베들레헴으로 가는 길에 세례 요한이 출생한 예루살렘 근교의 사가랴 집(오늘날의 엔케렘)을 찾았을 수도 있다.

   
▲ 나귀는 화물 수송용 또는 타는 용도로 사용된다. 예수님 시대때는 자가용에 해당했다. (사진 제공 김동문)

예수님은 ‘마리아의 아들 예수’

예수님 당시 자녀들은 ‘누구의 아들’로 불렸다. 성이 없던 시절이었기에 한 사람 한 사람을 구분하기 위하여 지역 연고나 가족 연고를 이름에 덧붙이곤 했다. 누구의 아들이라고 불릴 때는 당연히 아버지 아무개의 아들로 불렸다. 그런데 예수님은 요셉의 아들이 아닌 마리아의 아들 예수로 불렸다. 이것은 아비가 누군지 모르는 마리아의 아들 예수라는 의미였다. ‘아비 없는 자식’ 또는 ‘호래자식’이라는 비아냥거림과 조롱이 섞여 있었던 것이다.

동방박사 세 사람?

동방박사들과 목자들은 동시에 출현하지 않았다. 성극을 할 때면 으레 아기 예수님을 경배하는 이들 가운데 목자들과 동방박사가 동시 출연한다. 박사이니 박사 가운을 입혀서 출연시키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은 성경적이지 않다. 이 이야기를 풀어 보자.

1) 동방박사들은 박사가 아니었다

그들은 페르시아 점성술사였다. 이들은 자신들의 지식에 바탕을 두고 예루살렘으로 유대인의 왕을 찾아 나섰다. 동방, 오늘날의 페르시아에서 예루살렘까지는 어림잡아 1500킬로미터 이상이다. 비행기로도 2시간 안팎이나 걸린다. 아마도 3개월 안팎이 걸렸을 이 장거리 여행에 이들은 낙타를 타고 이동하였다. 다른 교통수단은 불가능했다. 당시 사막 횡단이 수반되는 장거리 여행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재력도 있어야 하고 모험심도 있어야 가능했다.

2) 동방박사는 모두 몇 명이었을까?

흔히 3명이라고 알고 있다. 그런데 성경 어디에도 3명이라는 말은 나오지 않는다. 전승에 따라 동방박사가 3명이라고 말을 한다. 그러나 조금 더 정확한 성경 교육을 하려 한다면 그냥 ‘동방박사들이 왔다’고 말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3) 동방박사들이 예수님을 만난 것은 언제일까?

그거야 예수님이 태어나신 날 아닌가? 그렇지 않다. 마태복음 2장 16절에서는 헤롯이 박사들을 만난 시점 등을 기준으로 하여 베들레헴 주변 지역의 두 살 이하 어린아이들을 죽이는 장면이 나온다. 박사들이 예수님 탄생일에 베들레헴에 들어왔다면 헤롯이 이렇게 하지 않았을 것이다. 정확히 그때를 알 수는 없다. 아마도 예수님 일행은 헤롯의 죽음의 위협을 피하여 이집트(애굽)로 들어가기까지 베들레헴 지역에 살고 있었을 것이다. 동방박사들이 별을 발견한 시점부터 헤롯이 두 살 이하의 어린아이들을 죽이던 때까지는 2년여의 시간이 있었다. 이 기간 중 많은 시간은 동방박사들이 그들의 나라에서 베들레헴까지 오는 데 사용되었을 것이다. 최소한 동방박사들은 예수님 탄생 1년은 족히 지났을 시기에 베들레헴을 찾았을 것이다.

4)동방박사는 별 따라 오지 않았다

동방박사는 별의 인도를 받아 예루살렘까지 온 것이 아니다. 별을 발견(관측)하고 자기들 나름대로 계산하고 판단하여 예루살렘으로 온 것이다. 동방에서 그들이 본 별은 예루살렘에서 베들레헴으로 발걸음을 옮길 때 문득 다시 나타났다고 성경은 적고 있다. “박사들이 왕의 말을 듣고 갈새 동방에서 보던 그 별이 문득 앞서 인도하여…”(마 2:9) 갔다고 성경은 분명하게 적고 있다. 별에게 끌린 이들이 정작 별의 인도를 받아서 갔던 구간은 예루살렘에서 베들레헴까지 길어야 8킬로미터 정도였다.

동방박사 이야기를 나누면서 헤롯왕의 나이에 무관심했던 것 같다. 동방박사들은 예루살렘에 이르러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뇨’라고 물었다. 당시 이 질문을 들은 사람들은 헤롯왕이 낳은 새로운 왕자가 어디 있느냐는 뜻으로 해석했을 것이다. 그러나 헤롯왕이 주전 74년부터 70년을 살았음을 고려하면, 칠순에 가까운 헤롯왕이 늦둥이를 낳았다는 말이 된다. 동방에서 온 차림새가 이상한 무리가 왕자에게 문안하겠다 하니 예루살렘 사람들에게 이야깃거리가 되었을 것이다.

맺는 말

있는 그대로의 예수님의 탄생 이야기에서 엿볼 수 있는 것이 있다. 예수님은 아비 없는 자식처럼 태어났다. 그의 탄생을 함께해 준 이들은 유대 땅에서는 사회적으로 왕따 대상이기도 했던 목자들, 고용된 목자 즉 삯꾼 목자들이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이방인 그것도 종교적, 인종적으로 유대인과는 상종할 수 없는 존재였던 페르시아의 종교인들이었다.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요 1:13)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 아님을 보여 준다. 예수님의 탄생 이야기는 이런 복음을 너무나 구체적으로, 적나라하게 드러내 주고 있는 것이다. 종교나 인종 등 수많은 이유로 막힌 담이 존재하는 그 시대에, 막힌 담이 깨진 자리가 예수님의 탄생 이야기에 담긴 것이다.

물론 이런 해석과 다르게 해석하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다만 익숙한 성경 읽기를 넘어서서 시대적인 배경 속에서 성경을 다시 보도록 하는 훈련이 교회 교육에 주어졌으면 하는 고민을 담아 본 것이다.

성탄절을 성탄의 의미를 느끼고 나누는 중요한 절기로 맞이할 수는 없을까? 이번 성탄절에는 세계지도(최소한 중동 지도)와 당시의 탈 거리, 먹을거리, 입을 거리 등을 잘 소개하면 좋겠다. 입체적으로 지형을 느낄 수 있도록 돕는 구글 어스도 활용하고, 예수님 시대 생활 풍습을 담은 시청각 교재나 1세기 전후한 시대의 로마제국이나 팔레스타인, 페르시아의 문화 관련 동영상도 활용하면 좋을 것 같다. 예수님의 탄생은 시공간 속에서 실제 벌어진 일이기 때문이다.

해석이 없는 ‘재현’하기를 넘어서야 한다. 성경이 말하는 성탄의 의미를 현재의 자리에 바로 적용할 수 있도록 고민하는 교육이 이뤄지면 좋겠다. 의례적인 이웃 돕기 활동을 넘어서야 한다.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연상시키는 장식들을 제거해 보라. 아이들이 (때로는 교회 어른들이) 문제 제기를 할 것이다. “어, 전도사님! 왜 이렇게 성탄 장식이 이상해요?” 그때 그 질문을 성탄의 의미를 나누는 계기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어떻게’가 아닌 ‘왜’라는 질문을 통해 우리는 성탄의 의미를 돌아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스도 빠진 마스(축제)부터 돌아보자.

김동문 목사‧본지 편집위원 yahiy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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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 나는 어떤 사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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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는 여덟 살 난 딸과 다섯 살 난 아들이 있다. 나는 매일 자기 전에 아이들에게 성경 말씀을 들려주며 예수님에 대해 이야기해준다. 아이들은 신기해하며 재미있게 듣다가 이해가 안 되는 것이 있으면 질문을 던지곤 한다.

천국은 어디인지, 예수님은 왜 죽으셨는지, 하나님은 누구신지, 마귀는 도대체 왜 그러는지, 예수님이 구름 타고 하늘로 올라가실 때 어떻게 구름 밑으로 빠지지 않으실 수 있었는지, 모든 게 낯설고 궁금하다.

그러면서 아이들은 하나님과 예수님에 대해 조금씩 알아간다. 특히 여덟 살 딸아이는 예수님이 자신에게 어떤 분이신지를 깨달아간다. 그러나 아직은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고, 그 나이에 맞는 사고와 행동을 한다.

당연하다. 하나님이 여덟 살에게는 그 나이에 맞는 생각과 행동과 관찰을 하게 하셨기 때문이다. 여덟 살 아이가 예언과 방언을 하면서 은사를 경험하거나 성경 연구를 통해서 신앙을 키워가고 성경을 가르치는 일은 쉽게 일어나지 않는다. 각자의 나이와 환경에 맞는 인생을 사는 게 맞고, 그런 신앙을 갖게 되는 게 순리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두 개의 산을 넘어야 한다. 우리가 예수님을 만나고, 그분 안에 살게 되면 내적인 기쁨과 충만함이 주어진다. 그것을 우리는 ‘은혜’라는 말로 설명한다. 은혜를 간구하고 그것을 받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한다. 

은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선물이다. 우리가 어떤 처지에 있든지 하나님은 늘 우리에게 은혜라는 선물을 준비하시고, 우리를 만나주신다. 선물은 좋은 것이고, 누구도 선물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 은혜는 우리에게 각기 다른 모습으로 찾아온다. 이로 인해 우리는 간증을 갖게 되고, 하나님과 더 깊게 교제하며 살아간다. 

우리가 넘어야 할 첫 번째 산은 바로 ‘나에게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하는 것이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면 누구나 거치는 이 단계에서는 삶의 주인이 여전히 ‘나’ 자신이다. 내 중심으로 생각하고 분별한다. 이 단계를 지날 때 우리는 하나님을 이렇게 생각한다.

‘하나님은 나를 구원하시려고 그의 아들을 보내주시고, 내 필요를 아시고 쓸 것을 공급해주신다. 내 질병을 고쳐주시고, 사업을 지켜주신다. 내게 평화와 지혜와 명철을 주신다. 자녀가 좋은 학교와 직장을 가게 하시고, 그들의 갈 길을 예비해주시고, 열어주신다. 매일 만나와 같은 은혜를 주시고, 승진의 길을 열어주신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여러 가지 모양으로 자신을 나타내신다.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고, 우리를 잊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크고 광대한 분이시다. 하나님을 섬기고 그분을 믿기로 한 것은 정말 잘한 일 같다. 그러나 이 첫 번째 단계를 거치고 있는 사람들은 늘 하나님께 달라고만 한다.

이 땅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바로 이 단계에서 하나님을 섬기고 있다. 그런데 다음 단계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두 번째 산을 넘어야 한다. 그것은 ‘하나님께 나는 어떤 사람인가?’ 하는 것이다.

‘나를 위해 하나님은 자신의 아들까지 아끼지 않으셨는데, 그런 하나님께 나는 어떤 사람인가?’이런 질문에 대한 고민을 얼마나 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내 자신의 필요를 위해서는 부단히 노력하면서 하나님의 필요를 위해서는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가?

지금 이 시간, 우리의 왕은 하나님이시다. 이제 우리는 ‘나에게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의 산을 넘어 ‘하나님께 나는 어떤 사람인지’를 생각해야 한다. 예수님을 알아갈수록 ‘나 중심의 하나님’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하나님 중심의 나’가 되도록 힘써야 한다. 깨어 있다는 것은 바로 이런 것이다.

예수님을 만난 시간이 길어질수록 우리의 신앙도 나이가 들어야 한다. 더 성숙하고 거룩해져야 한다. 시간이 지나 나이를 먹어도 여전히 여덟 살짜리가 생각하는 하나님을 생각한다면 우리는 잠자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