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온 창세기 19:9~11
19:11 두 사람은 문 밖에 서 있는 사람들의 눈을 어둡게 했습니다. 그래서 밖에 있던 사람들은 젊은이나 노인이나 할 것 없이 문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기도: 공의의 하나님, 하나님 나라의 일에 주축을 감당하는 사람으로 서게 하시고, 언제나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선택을 하게 하옵소서.
롯이 “성문에 앉았다”는 것은 당시 문화로는 도시에서 매우 높은 장로쯤 되었다는 거래. (국회의원 + 판사 쯤) 사회적으로 성공한 걸텐데..
정작 그가 소돔 주민들에게 나쁜 짓 하지 말라고 타이를 때는 오히려 그들은 그를 “떠돌이”라며 업신여겼어.
19:7 롯이 말했습니다. “형제들이여, 이런 나쁜 일을 하면 안 되오.
19:9 롯의 집을 에워싼 남자들이 말했습니다. “저리 비켜라! 이놈이 우리 성에 떠돌이로 온 주제에, 감히 우리에게 훈계를 하려 들다니!” 그들이 또 말했습니다. “저 사람들보다 네 놈이 먼저 혼 좀 나야 되겠구나.” 그러면서 그들은 롯을 밀쳐 내고 문을 부수려 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었지만, 그리고 돈도 많고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에, 명예도 있는 사람이었지만
말씀대로 사는 게 아니라 소돔의 도시 문화에 동화돼서 그들을 형제로, 친구로 부르며 살던 사람은,
정작 가장 필요할 때, 가장 영향력을 미쳐야될 때 아무 힘이 없구나.
이게 어쩌면 예수님이 얘기하신 “맛을 잃은 소금”은 아닐까?
(그리스도인에게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평소엔 우리 친구, 형제처럼 보여도 가장 어려울 땐 이방인 같다.)
아브라함이 비교가 된다.
창세기 23:4 “저는 여러분들과 함께 사는 이방 사람이며 나그네입니다. 죽은 제 아내를 장사 지낼 수 있게 여러분들의 땅을 제게 좀 나눠 주십시오.”
창세기 23:5 헷 사람들이 아브라함에게 대답했습니다.
창세기 23:6 “내 주여, 들어보십시오. 어른께서는 우리들 가운데 하나님께서 세우신 지도자입니다. 우리 묘지 가운데 가장 좋은 곳을 골라 돌아가신 부인을 장사 지내십시오. 어른께서 돌아가신 부인을 장사 지내신다는데 우리들 가운데 그 누구도 자기 묘지라고 해서 거절할 사람이 있겠습니까?”
아브라함은 자기를 나그네라고 표현하면서 지역 사람들에게 부탁했어.
그는 그들과 동화되지 않았고 성문에 앉지도 않았어. 목축을 하며 장막에서 살고 있었지.
그러나 지역 사람들은 그를 “하나님이 세운 위대한 지도자”라고 평가했어.
롯과 아브라함, 왜 이런 차이가 있었을까?
그리스도인은 세상에서 높은지위 얻고, 성공하고 그런걸로 잘 사는게 아닌 것 같아.
하나님을 얼마나 제대로 믿고 얼마나 그 뜻대로 실제 사는 지, 그게 그를 높이는 것이 아닐까?
세상 사람들 눈치보고 친하게 지내려고 애쓰기 보단,
하나님 뜻에 비추어 내가 제대로 살아야겠다.
그러면 신경 쓰지 않은 세상에서도 존귀하게 되는 것 같아.
잠언 16:7 사람의 행위가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면 원수들까지도 그와 화평하게 지낼 수 있게 하신다.
즐거운 하루 보내렴~